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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묻지마 시내버스 투어

☜▩^^▩☞ 2009. 11. 3. 01:00

'묻지마 관광'

동료들이 내게 붙여준 별명이다. 리비아 부임 초기부터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사람들을 꼬여내 여기저기 돌아다닌 연유로 '여행 가이드'란 칭호가 붙었고,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기대하고 출발하면 여지없이 실망했기 때문에 언젠가부턴 정보제공을 거의 하지 않았더니 '묻지마'가 됐다. 이래저래 지금은 키워드 하나만 던져주고 떠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묻지마 관광'이 됐다.

이 이야기가 시작된 첫 번째 사건은 트리폴리 버스 투어였다. 승합택시를 타고 트리폴리를 드나들다 보니 늘 가던 길로만 다니게 되 트리폴리 다른 지역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건축을 전공하다 보면 관광지나 명승지 말고 이렇듯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폴폴 묻어나는 도시의 깊숙한 골목골목에 호기심을 갖기 마련이다.

승합택시가 멈추는 메디나의 버스정류장엔 트리폴리 시내를 누비는 수많은 버스들이 있다. 처음의 아이디어는 이랬다. 버스를 타고 가만히 있으면 버스는 트리폴리 변두리의 어떤 목적지를 향해 시내 구석구석을 누비며 우리에게 여러가지 모습을 보여주고, 도착한 종점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이곳 메디나까지 돌아올 것이다. 행여 맘에드는 곳이 있어 차에서 내려 길을 헤메이더라도 '메디나'란 지명 하나면 택시를 타고도 돌아올 수 있으리라.

이봐, 이 버스를 타라고. 트리폴리 최고야~

요렇게 행선지가 적힌 버스를 탔다. 나중에 혹시나 알아볼 수 있을까봐...

일단 눈에 보이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우등고속처럼 1+2열 좌석배치(물론 좌석은 우등이 아니다)로 일단은 창가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흩어져 자리를 잡았다. 이내 버스가 출발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건, 이 버스가 우리가 늘 다니던 자위아(필자가 체류하는) 방향으로 한참을 갔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차의 중간목적지는 잔주르(Janzur)란 곳으로, 트리폴리에서 자위아 방향으로 갈 때 지나가는 위성도시였다. 그러니 트리폴리를 벗어나서야 버스는 비로소 우리의 바램대로 낯선 곳으로 방향을 튼다.

그런데, 이때부터 예감이 안좋아진다. 도심지가 아니라 변두리 도시인데다 버스가 계속 간선도로로만 가니 애초에 기대했던 '도시'라던가 '사람들'과는 점점 동떨어져 가는 것이다. 해도 뉘엿뉘엿 넘어가는 데다, 주변 풍경도 점점 더 시골이 되어가는 게, '이러다가 길을 잃는 것 아닐까?'하는 불안감이 커져간다. 하지만 주동자인 나까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동료들의 불안한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얼마정도 더 지나니 다른 승객들이 하나 둘 내리고 이내 우리들만 남게 됐다. 아까부터 연신 이상한 눈빛을 보이던 버스 기사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말을 걸어온다. '어디까지 가세요? (물론 이런 말일꺼라 짐작한 것이다)'.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몇마디를 더 나누다가 더이상 안되겠는지 기사가 차를 세웠다.

기사 : 어디까지 가세요?
우리 : 특별히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니구요, 여기가 어디예요?
기사 : 여긴 인질라(Inzila)라는 곳이예요.
우리 : 아, 그래요. 안그래도 이젠 트리폴리로 돌아갈 작정이었어요.
기사 : 그럼, 제가 차를 잡아드릴께 그걸 타고 가세요.
우리 : 이 차는 안가나보죠?
기사 : ......
우리 : 아뭏든 감사해요.

인질라 중앙의 모스크 겸 상가. 이미 날이 저물었다.

우리에게 돌아가는 차까지 잡아준 친절한 운전기사. ^^

손짓발짓 섞어가며 아는 아랍어 한마디, 아는 영어 한마디가 엮여 저런 대화가 오고갔다. 뭐 말이 안통해도 대화는 통하는 법이다. 그런데 이날 우리가 도착한 인질라. 그땐 몰랐다. 그 후로도 우린 업무상의 이유로 저곳을 몇차례나 더 갔어야 했다는 사실을. 

그곳은 도시에서 약간 떨어진 변두리에 세워진 뉴타운이었다. 우리도 자위아에서 하는 일이 뉴타운을 건설하는 일이었으니, 당시엔 그와 같은 뉴타운이 리비아 곳곳에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렸을 때만 해도 '여기에도 이런 동네가 있네'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트리폴리 인근에서 거의 몇 없는 선례였던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 입주한. 그래서 현장조사 및 답사를 위해 몇차례 더 방문하게 됐던 것이다. 그때 알았더라면 서둘러 돌아올 게 아니라 찬찬히 좀 더 둘러봤을텐데.

돌아오는 버스는 약간 다른 노선이였지만 갈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의 연속이었다. 묻지마 관광의 첫번째 시도가 실패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으나, 같이 동행했던 사람들 그 다음주에도 꼬임에 넘어가 또다시 '묻지마'에 동참했으니. ^^ 별 소득이 없더라도 지금까지 계속해서 지지해준 동료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출처 : 구글어스
오늘의 버스노선. 붉은색이 자위아 노선과 겹치는 부분이며, 자주색이 처음 가봤던 노선. 끝의 초록색 부분이 인질라(Inzil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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