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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잡기

동거 추천서

☜▩^^▩☞ 2009. 10. 15. 03:34

글을 읽다가 아무래도 한 마디 거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아 엮인글로 남깁니다. 원 글은 세미예의 '동거 의논했다가 아수라장이 된 사연'입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저는 수년간 주위의 미혼 청춘남녀들에게 동거 예찬론을 펴던 사람임을 분명히 합니다. 저도 딸아이가 하나 있는데, 만약 커서 지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겠다고 하면 지금 쓰려는 얘기를 그대로 들려줄 겁니다. 반감을 가지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동거를 생각하는 청춘남녀들에게 필요한 건 '동거를 해라, 말아라'가 아니라 어떤 동거를 해야 하느냐를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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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란 같이 사는 걸 말합니다. 단어가 주는 의미보다, 같이 산다는 건 훨씬 무거운 의미를 가집니다. 물론 그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짧은 여행보다 가볍게 기억될 수도 있고, 때론 인생의 커다란 혁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같이 산다는 건 두 사람의 삶이 겹쳐지고 포개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지 같이 먹고, 자고, 웃고, 즐기는 가운데서도 다른 어떤 사람보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또한 동거는 그러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한 지붕 아래 아무런 관계없이 기거하기 위해 동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행동 한가지 한가지가 상대방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상대방과 나의 삶은 변화합니다. 누가 어떻게 얼마만큼 변화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중요하고도 분명한 것은 처음 같이 살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서로의 삶을 겹쳐놓기 위해 시작한 것이지, 떼어놓기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Chris & Jessica Engagement - Falling
Chris & Jessica Engagement - Falling by Auzigog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사람은 저마다의 생김이 있어 다른 사람과 쉽게 포개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어 다른 사람과 어긋나지 않을 정도로만 포개져 살아갑니다. 사람이 사귀기 시작하면 접촉면이 생깁니다. 예쁘고 반듯한 면을 시작으로 조금씩 접촉면을 늘려갑니다. 그 중에 모난 면이 부딪혀 싸우기도 하고, 톱니처럼 이가 딱 맞아 들어가 행복해하기도 합니다.

만약, 당신이 이제 동거를 생각한다면 나는 그것을 적극 추천하겠습니다. 더불어, 설명서와 주의사항도 일러줘야겠습니다. 사람들은 포장을 뜯을 때 설명서를 주의 깊게 읽어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먼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포장지를 벗겨낸 알맹이를 각오해야 합니다. 한참을 들여다보며 비교하고 고민해봐도, 결재버튼을 누를 땐 이미 각오를 해야 한단 얘깁니다. 그건 내가 기대했던 선물이 아닐 수 있습니다. 때로 엉뚱한 물건이 들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쉽게 버리거나 돌려보내선 안됩니다. 내 인생을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용기도 필요합니다. 당신도 알맹이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알맹이가 부딪혀야 같이 사는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동거를 추천하는 것입니다. 같이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동거를 함으로써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동거를 해보신 분들은 이 말을 실감하실 겁니다. 결혼하신 분들도 가슴 깊이 동감하실 겁니다. 같이 살아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지 못했을 알맹이까지 서로 까놓고 비벼댈 수 있습니다.

Beagle
Beagle by Claudio Matsuoka 저작자 표시

하지만 동거생활의 진정한 의미는 알맹이를 까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서로 속내를 내보이고 부딪히기 시작했다면 이제 맞춰가야 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나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제 상대방과 내가 포개질 수 있도록 나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좋을 때만 상대방을 대할 순 없습니다. 나쁠 때도 상대방과 마주해야 하고 화날 때도 상대방과 마주해야 합니다. 마주하기 싫을 때도 상대방과 마주해야 합니다.

피해선 동거가 아닙니다. 피하지 않고 겪어내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동거입니다. 그게 그 사람과 살아가는 방법이고 그 사람과 삶을 포개는 방법입니다. 상대방도 변화시켜야 합니다.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내 생각과 감정과 기분과 느낌을 설명하고 호소하고 얘기하고 주장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도록 길들여야 합니다.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결혼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결혼도 같이 사는 것이니 동거와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결혼은 포개놓은 돌 위에 끈을 한 번 더 묶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 잘 포개지지 않더라도 끈이 있기 때문에 쉽게 떨어지지도 않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더 크고 굵은 끈이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어 놓습니다. 하지만, 끈에만 의지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걸 당신은 잘 알 것입니다. 끈에 너무 의지하다 보면 어느새 묶여있는 자신을 발견할 테니까요.

또한 결혼은 둘 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친구들과 가족들 뿐 아니라 세상에서 내게 닿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동거보다 더 신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결혼은 동거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상대방의 가족들과 친척들과 친구들과 동료들까지 나의 결혼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둘이서만 잘한다고 다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결혼은 동거보다 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일입니다.

동거는 결혼보다 틀어지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말리고 싶진 않습니다. 깨뜨리기 위해 시작하는 일도 아니며, 쉽게 깨지기 때문에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가짐만 서로 간직하고 있다면 계속 잘 해 나가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상대방과도 나누고, 진심어리게 다짐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입니다. 당신의 결정을 나는 지지합니다. 비록 내일 다시 돌아오더라도 나는 계속 당신을 지지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너무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도전하도록 당신을 응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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