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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Mac으로 돌아가? 본문
며칠 전 새로운 iMac이 출시됐다는 메일이 왔습니다. 곧 국내 판매가도 공개될 텐데 너무 비싸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번에는 Mac으로 바꿀 생각이거든요.
제가 처음 맥을 만난 건 대학교에 막 입학하던 해의 Mac LC입니다. 당시 텍스트 세상이던 PC에 비해 맥은 Graphic User Interface란걸 보여주었죠. 지금이야 당연한 것들이지만, 파일을 지울 때 쓰레기통에 넣는다는 건 그때로써는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란 생각이었습니다. 하드웨어의 디자인 또한 그때나 지금이나 시대를 앞서가는 점에는 변함이 없어, 지금 내놔도 손색없는 심플하면서도 예쁜 녀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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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땐 제가 잘 인식하지 못했던 사실을 얼마 전에 하나 알았습니다. 당시 컴퓨터란 놈들이 죄다 비싸긴 했습니다만, 이놈의 가격이 300만원이나 했었더군요. 제가 수많은 컴퓨터를 구매해봤지만, 그렇게 비싼 컴퓨터를 산 건 그때가 유일했을 겁니다. 넉넉치 못한 형편임에도 아들래미 대학 들어갔다고 거금을 들여 사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등록금이 입학금까지 포함해서 140만원이었으니, 1년치 대학 등록금을 훨씬 넘어가는 가격이었으니까요. 세삼 부모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런 비싼 컴퓨터로 뭘 했느냐? 한글에서 계단형 폰트가 도트프린터로 찍혀 나올 때, 전 트루타입폰트(True Type Font)의 매끄러운 글씨체를 종로 맥센터 레이저 프린터로 찍어냈습니다. 내용이야 둘째 치더라도 겉모습은 마치 인쇄한 것 처럼 머리말에 꼬리말까지 덧붙이고 그림까지 집어넣어 문서를 만들었으니 남들과 차원이 다른 인쇄물이었습니다. 다만, 레포트가 아니라 '학생운동'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었던 지라 부모님의 기대와는 조금 동떨어진 것이어서 그 점이 좀 죄송하지만요...
당시 맥을 쓰면서 배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독보적인 사진 편집 소프트웨어인 '포토샾(Photoshop)'도 맥을 통해 배웠고, 악보에 음표를 찍으면 그대로 연주가 되는 '앙코르(Encore)'도 당시 많이 가지고 놀던 대표적 프로그램입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니 컴퓨터로 뭘 했나 싶겠지만 George Winston의 피아노곡집을 모두 컴퓨터로 옮기고, 인화한 사진을 스캔 떠다가 포샵 편집해서 앨범 만들고, 또 가끔은 그림과 도면까지 들어간 레포트 만들어 내고 하면서 놀았더랬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건, 맥을 쓰면서 만큼은 컴퓨터를 위해 쏟아 부은 시간보다 컴퓨터를 즐기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컴퓨터를 쓰다보면, 컴퓨터로 뭔가를 하는 시간만큼 컴퓨터를 위해 쏟아붓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는 걸 가끔 느낍니다. 툭하면 윈도우즈를 다시 깔아줘야 하고, 바이러스라도 걸릴까 항상 신경써줘야 하고, 쓸데없는 프로그램 때문에 느려진 건 아닐까 디스크 정리도 하고, 시작프로그램이나 레지스트리에 적혀있는 수많은 목록이 과연 어떤 것들인지 몰라 고민도 하고... 상대적으로 맥은 컴퓨터가 사람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몇 안되는 사례였습니다.
그런 맥과 멀어진 지도 15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그동안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나기도 했고, 다시 돌아와 살리기도 했으며, 애플이 맥 보다는 아이팟으로 살아가는 회사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컴퓨터 세상의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갑니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제 시간도 어느덧 많이 흘러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됐습니다.
이제 아이가 컴퓨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를 요술상자 마냥 바라보게 된 것이죠. 그런데, 앞으로를 생각해보니 윈도우즈라는 환경에서는 컴퓨터가 단지 사무용기기가 되거나, 혹은 게임기가 되거나, 혹은 사용자를 컴퓨터 전문가로 만들거나 세 가지 밖에는 못할 것 같더군요. 컴퓨터가 놀이가 아니라 일이 되버리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기억 속의 맥을 꺼내 아이에게 주고 싶어 졌습니다. 게임이 아니어도 그 자체로 놀이가 되고, 인생을 재미있게 해 주는 데 보탬이 됐던 컴퓨터를요.
어차피 컴퓨터인데 맥이 뭐 그리 대단하길래 그러냐고 반문하실지 모르지만, 가까운 전시장에 가서 맥을 접해보면 다르다는 걸 느끼실 겁니다. 똑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더라도 설명서를 펴놓고 기능을 하나하나 익혀야 하는 '전자제품'보다는, 이것저것 눌러보며 재밌어하는 '장난감'이 맥이니까요. 'C:/>DEL'와 '휴지통'의 차이랄까요.
디자인이 약간 변했습니다. 늘 그렇듯 좀 더 이뻐졌죠. 화면은 21.5"와 27" 두가지로 각각 1920x1080, 2560x1440 해상도입니다. 성능이야 말할것도 없고, 키보드와 마우스가 이제 무선으로 바꼈네요. 이제 전원선을 제외하곤 깔끔하게 정리가 되겠습니다. 맥의 마우스액션은 써보시면 참 재미있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어디선가 가격정보가 나왔는데 정확한 진 모르겠습니다.
iMac 27" Core i5 2.66GHz, 4GB, 1TB, Radeon 4850 2,689,000원
iMac 27" Core2Duo 3.06GHz, 4GB, 1TB, Radeon 4670 2,290,000원
iMac 21.5" Core2Duo 3.06GHz, 4GB, 1TB, Radeon 4670 1,999,000원
iMac 21.5" Core2Duo 3.06GHz, 4GB, 500GB, GeForce 9400M 1,650,000원
역시 가격은 최고성능급 PC와 맞먹습니다. PC에 Leopard(맥용OS)를 설치할까 잠깐 고민하다가도, 그놈의 디자인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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