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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안 (Gharyan) 본문
가리안(Gharyan)은 트리폴리 남쪽으로 150km정도 떨어진 제벨(Gebel) 위쪽의 도시다. 리비아의 제벨이란 서쪽의 튀니지에서 시작해 동쪽의 홈즈까지 수백킬로미터 길이의 고원지대를 말한다. 해발 높이는 얼마되지 않지만 지중해에서 만들어진 구름이 제벨 경계에서 비를 뿌리기 때문에 기후적으로 중요한 경계선 역할을 한다. 이 제벨 고원의 끝자락, 전망 좋은 낭떠러지를 따라서 오래된 마을이 많이 분포하는데, 가리안은 그런 도시중 큰 규모에 속하는 곳이다.
제벨 위쪽은 아래쪽에 비해 물 구하기도 어렵고, 사막으로 부터 불어오는 모래바람에도 고스란히 노출된 지역이다. 그런데 아래보다 위쪽에 마을이 많이 분포하는 건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다보니 그렇게 된게 아닌가 한다. 이런 기후적 특성 때문인지 이곳의 전통적인 가옥의 형태는 토굴이다. 일단 땅에다 커다란 중정을 파고, 중정 주위로 다시 작은 굴을 파서 방으로 쓰는 식이다. 집이 지하에 위치하니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며, 모래바람에 노출되지 않고 비가 내릴 때 물을 모으기도 좋다. 자연에 적응해 사는 인간의 지혜랄까. 오늘의 목적지는 바로 이곳, 가리안에 위치한 전통 토굴집이다.
Trogolodyte 1666
토굴집의 단면을 그린 이미지. 대략 이렇게 생겼다. |
이런 형태의 전통주거형식이 있다는 건 트리폴리를 돌아다니다 받은 작은 팜플렛에서였다. 주말을 맞아 쇼핑나온 듯한 가족이 우리 일행을 발견하더니 다가와 팜플렛을 나눠주며, 그 중 중학생쯤 되보이는 여자아이가 영어가 되는 지 우리에게 땅속의 집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줬다. '묻지마 관광'의 호기심이 왕성하게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바로 팜플렛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했고, 그 다음주에 찾아가게 된 것이다.
리비아에서 지내는 동안 산이라곤 거의 못 보며 지낸 탓에, 가리안으로 향하면서 만난 고원은 꽤나 신기했다. 더구나 자위아를 출발해서 남쪽으로 갈수록 황량해지는 풍경이 확실히 낯선 세상에 있음을 실감나게 했다. 두 시간여 달려 드디어 고원 입구에 도착. 정확히는 가리안에서도 아보갈린(Abo-ghalyn)이란다. (아마도 가리안 입구란 뜻이 아닌가 한다. 물어본다는 게 깜빡했다)
이 곳엔 대관령같이 구비구비 굽은 옛 도로와, 그 옆으로 새로 난 도로가 같이 있었다. 아무래도 우린 관광을 온 것이기에 옛길로 접어들어 몇달만에 처음 보는 '산'을 올라갔다. 이 곳을 경계로 멀리 지중해까진 평야지대이기 때문에 확실히 전망이 탁 트인것이 가슴까지 시원해 지는 느낌이다. 혹시나 지중해까지 보일까 기대도 했었지만, 시정이 좋지 않아 멀리보이는 풍경은 흐릿했다. (돌아와서 계산해보니 아무리 맑아도 지중해는 너무 멀어서 절대로 보일수가 없었다. 300m 정도 올라가면 지구 곡율을 계산했을때 약 50km 까지가 보이는데, 그정도로 공기가 맑은 날도 드물거니와 지중해까진 100km 이상 떨어져있으니...)
출처 : 구글어스 |
옛길을 따라 올라가던 중 한 컷. 뒤로 희미하게 지평선이 보인다. |
한동안 중턱에 서서 사진도 찍고 경치도 감상하다가, 다시 목적지로 향했다. 리비아엔 주소체계가 없어 길을 찾는 게 좀 힘든데, 다행히 큰길에서부터 조그만 표지판을 달아놔 어렵지 않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1666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현재 가족은 토굴집 뒤에 새로 지어진 신식가옥에서 살고 있지만, 이곳을 관광지로 개조해 전통민박과 같은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여건이 허락된다면 하룻밤 묶으면서 밤하늘의 풍경이나 아침공기의 냄새, 토굴이 주는 아늑함을 맛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상상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토굴집의 윗쪽. 뒤에 보이는 것은 현재 이곳을 운영하는 가족이 살고있는 집. |
위에서 내려다본 중정. 가운데는 원래 더 파여있어 물을 모으는 곳인데, 지금은 마루를 놓아 중정으로 사용한다. |
중정에 모여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술 한잔 기울이면 그만이겠다. 가운데 모서리의 구멍은 밖에서 들어오는 입구. 통로에 화장실 등이 있다. |
이 지역에는 지금도 이런 구멍(중정)이 꽤 남아있다. 언제부터, 또 언제까지 이런 형태의 가옥에서 생활했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이 집이 만들어진게 우리로 말하면 조선시대니 수도나 전기가 보급되기 전까지 사용됐음직 하다.
내부는 처음 상상했던 것 보다 굉장히 넓었다. 중정의 규모도 그렇고 각 방의 크기도 그렇다. 더구나 어둡고 축축한 지하굴의 이미지가 아니라 아늑한 피난처의 이미지랄까. 응접실로 보이는 곳에 안내되어 들어가 둘러 앉았다. 차를 한 잔 대접한단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면서 방안의 분위기에 젖어봤다. 허브홍차의 향기가 감돌면서, 중정에 내리쬐는 햇살이 방안으로까지 따갑다.
손님에게 숙소로 제공되는 방의 모습 |
카펫과 이불 등을 걷어낸 방의 모습이다. |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응접실. 우리도 들어가서 (약간의 돈을 내고) 허브홍차를 마셨다. 우리 말고도 관광객이 더러 있는게 나름 유명한 관광지인가보다. |
이곳을 관리하고 있는 가족 중 한 분과 다함께. |
인간의 지혜와 생명력은 참 놀랍다. 척박하고도 험난한 이 땅에까지, 그저 내 기준으로는 황량하기 그지없고 먹을 것 하나 제대로 구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 곳에까지 이처럼 훌륭한게 적응해 살아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현대의 문명은 과학기술을 앞세워 자연을 거스른다. 물을 끌어대고 전기를 끌어대고, 방송과 인터넷으로 온지구와 구석구석 닿으려고 한다. 그만큼 자원에, 물질에, 기계에 의존해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점점 지혜와 생명력을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휴대폰과 인터넷 없이는 친구도 못 만나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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