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취미 그리고 잡설
아이리스 본문
내용 말미에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리비아 생활동안 사람들의 가장 큰 오락꺼리는 비디오 보기입니다. 한국에서는 저녁나절 일하거나 놀기 바빴던 사람들이, 이곳에선 놀꺼리도 거의 없고 그렇다고 공부는 하기 싫으니 비디오만 보고 누워있는 겁니다. 대신 책을 읽으면 어떨까 하지만, 종이책은 무거워서 많이 못들여와 구할 수 있는 책이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파일로 된 책들은 읽는 맛이 떨어지는 통에 손이 잘 안가게 됩니다.
비디오의 대부분은 영화와 드라마, 오락프로 그리고 야동(*^^;)입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별의별 프로그램들이 돌아다니데, 그 중 영화는 근래에 나온 작품이라면 웬만해선 다 구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블로깅을 하다가 좋은 영화평을 발견하면 뒤져서 보게되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그래도 역시 비디오 하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시리즈물입니다(야동 아닙니다 -,ㅡa). 흔히들 말하는 '미드', '일드'를 포함해서 '일애니', '중드' 그리고 '한드'등, 휴가를 다녀오거나 새로 입국하는 사람 편에 외장하드로 실어 나릅니다. 그중 가장 최근의 시리즈물이 바로 아이리스입니다.
뉴스를 통해 그런 드라마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구할 길도 없고 본래 드라마 보기를 즐기지 않아서 별 관심이 없었는데, 남자 주인공이 이병헌씨란 말에 찾아보게 됐습니다. 여주인공으로 김태희씨가 나온다는 건 알았지만 남자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몰랐거든요. 용케도 저희 현장에 4회(10월22일 방영분)까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김태희씨를 싫어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연기자로서의 김태희씨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김태희씨는 극으로의 몰입을 '저해'하는 배우였으니까요. 하지만 이병헌씨는 제가 많이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특히 맘에 들었던 작품은 2002년 개봉한 '중독'이란 작품이었는데, 제가 배우 이병헌을 좋아하게 된 계기입니다.
사실 저는 배우가 연기를 못한다고 싫어하진 않습니다. 정작 싫어하는 배우는 연기를 아주 잘하는 배우입니다. 악역을 정말 훌륭하게 소화해 원래부터 비열하고 치졸한 악당이었다고 생각되는 배우들을 싫어하죠. 대표적인 예가 '친절한 금자씨'의 최민식씨입니다. 아동연쇄살인범으로 나오는데, 그 뒤로는 최민식씨가 등장하는 모든 콘텐츠(심지어 여성잡지 인터뷰까지)에서 '저 비열한 놈, 또 거짓말을 하고 있군'하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겁니다. 뭘해도 안이쁘게 보이는 거죠.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론 자꾸 미운겁니다. 또다른 예가 황정민씨입니다. '달콤한 인생'(아이리스와 유사하게 김영철씨가 보스로 등장하고 이병헌씨가 행동대원으로 등장하죠)에서 맡았던 양아치 깡패역과, '바람난 가족'에서의 비겁한 변호사역 덕분(?)에 한동안 제 미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대종상 시상식의 감동어린 '밥상' 수상소감 덕분에 나쁜 이미지는 거의 없어졌죠.
다시 드라마 예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일부 '짜집기 드라마다', '어떤어떤 영화, 어떤어떤 드라마와 너무 비슷하다' 뭐 이런 얘기들이 있는 걸로 압니다. 저 역시 단 4회지만 보는 내내 그런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작품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 - '재미있느냐 없느냐'에 빗대어 보면 정말 잘 만든 드라마라는 생각입니다. 재미있었거든요. 이병헌씨를 제가 좋아한 나머지 너무 애정어린 눈빛으로 드라마를 봤을지도 모릅니다(배우로서 좋아한다는 것이지 제가 게이는 아닙니다 -,ㅡ;) 하지만 1회를 보고나니 2회를 보지 않을 수 없었고, 2회를 보고나니 다시 3회, 다시 4회...
냉정한 입장에서 보면 스토리 구성에 엉성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닙니다(사실 굉장히 많습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기만 한 것도 아니고, 헝가리나 일본의 장면들은 관광사의 홍보 동영상이나 한편의 뮤직비디오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재미있는 겁니다. 그렇다보니 김태희씨의 연기도 괜찮아보입니다. 다른 부분은 차치하고 극중 김현준과 최승희가 정말 사랑하는 사이로 보이느냐는 물음에 제 대답은 '정말 그렇다'입니다. 이병헌씨야 워낙 연기 잘 하지만 만약 김태희씨의 연기가 부족했다면 절대 그렇게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그래서 정말 김태희씨가 이병헌씨를 좋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앞으로가 궁금합니다. 제가 본 건 도입부 뿐이라 상황설정과 두 주인공의 사랑이야기가 주였습니다. 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일본에서의 유치찬란한 사랑만들기는 참으로 가소로운 장면의 연속이었습니다만, 아래 두 개의 장면때문에 두 사람의 진정성이 느껴지면서 가소로우면서도 설득력있게, 또 아름답게 다가옵니다(배경이나 배우가 아름다워서가 결코 아닙니다 ^^a).
아마 많은 분들이 인상적으로 보셨을 키스씬입니다. 덮치고, 뺨맞고도 다시 덮치고~
그리고 고백장면. 작게 읊조리듯 뱉어내는 마지막 대사에서 안넘어갈 분들이 몇이나 될지...
내가 왜 NSS에 들어온지 알아요? 사실 저... NSS에서 요구하는 충성심 그딴 거 잘 모릅니다. 특임대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였구요. 목숨 걸고 수행해야 되는 그 많은 임무들... 그거 가능하게 만든건 투철한 애국심. 그런 거 아니었어요. 그냥, 난생 처음으로 재밌다고 느꼈어요. 가까스로 길 찾은 다음에, 아 이게... 내 운명이겠구나 뭐 그런 생각 했어요. 강의실에서 당신 처음 만났을때 부터 한 번도 만만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그리고 이거 장난아닙니다. |
아무래도 이번 귀국길에는 부다페스트를 들려봐야 하려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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