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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를 보러 가자, 무단외출 1편 본문

리비아

지중해를 보러 가자, 무단외출 1편

☜▩^^▩☞ 2009. 10. 17. 01:00

2009년 1월 1일, 동료 둘과 함께 지중해 바다를 보러 나가기로 했다. 보통은 현지인 운전기사를 대동해 회사차로 외출하지만, 그래서는 지리 파악도 안돼고 특정 목적지 밖에 나가지 못해서 휴일이고 하니 무작정 길을 나선 것이다.

필자가 있는 곳은 트리폴리에서 서쪽으로 40km 쯤 떨어진 자위아(Az Zawiyah)란 곳이다. 자위아 시내에서 숙소까지는 구글로 봤을 때 약 5km 정도가 떨어져 있고, 다시 그로부터 5km를 더 가면 지중해 바닷가였다. 여하튼 북쪽으로만 가면 지중해 바다에 도착하니 어디든 당도하지 않겠는냐는 생각과, 안되면 걸어서 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출발했다.

비행기에서 본 자위아

사진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자위아 인근의 지중해다. 현대건설에서 시공한 화력발전소 부근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폐차장(겸 중고부품 재활용센터)이 있는 곳이다.

출발해서 10분쯤 걸어가니 지나가던 차가 우리 옆에 서서 손가락으로 시내 방향을 가리킨다. '태워준다는 뜻?' 일단 차에 올랐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우린 연신 '자위아'를 연발했고, 어차피 그 방향으로 가던 차니 적당한 곳에서 내려달라 할 참이었는데, 제법 번화한 교차로에 차를 세운다. '돈을 줘야하나?' 잠깐 망설였는데, 우리가 내리고도 우릴 바라보는 눈빛이 그런 것 같아 1 디나를 내밀었다. 고맙다는 제스춰를 취하더니 간다.

리비아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거의 못한다. 숫자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아랍어만 하면 주변 이슬람권에선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더 그렇지 않을까 한다. 덕분에 의사소통이 굉장히 어렵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지만 그 동안 자위아 시내는 몇 차례 나가봤기 때문에, 구글어쓰에서 본 시내 지리를 연상하며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그동안 나가봤던 곳은 주로 자위아 동쪽이었고, 이날 차에서 내린 것은 서쪽 끝이었다.

자위아 시내 아파트

조그만 아파트단지. 약간이나마 조경도 돼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그나마 낯이 익은 동네에 이르렀을 때, 시내에서 피자집을 발견했다. 건물이나 간판이 좀 낡긴 했지만 생김새가 영락없이 '피자헛'이다. (이름이 '피자홈'이었으니 지금도 그냥 피자헛으로 부른다) 점심때도 다가오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여 가게 안으로 들어가봤다. 매장의 생김새가 영락없는 피자집 맞다. 한쪽에 샐러드바도 갖춰져 있고, 주문과 계산을 위한 계산대도 있으며, 그 뒤로는 주방까지.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종업원이 남자라는 점. 게다가 나중에 안 것이지만, 주방에 다른 종업원 없이 그 직원 혼자서 주문받고, 피자 만들고, 서빙하고, 계산까지 하고 있었다. 손님이 많지 않은가 보다.

어쨋든 가져다준 메뉴판에는 다행히 그림과 영어로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고, 페퍼로니/콤비네이션/치즈/참치(엥, 참치?) 등의 종류에 팬/씬, 치즈 크러스트 등 다양한 메뉴를 구비해 놓고 있었다. 피자는 15디나 정도고, 샐러드도 3~4디나 정도로 우리나라보단 싼 편이다. 리비아가 과거에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어 내심 피자는 정통이태리 피자가 아닐까 생각하며 주문을 했다.

그보다 더 궁금했던 건 샐러드였다. 리비아 사람들은 샐러드로 뭘 먹을까? 이상한 걸 먹지는 않을까?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역시 샐러드는 입맛에 맞는 게 반, 이상한 맛이 나는 게 반이었다. 과일이나 으깬 감자, 야채 정도가 먹을 만 하고 올리브 오일에 적신 무엇(?)과 정체모를 범벅 등은 못 먹을 정돈 아니지만 다시 먹진 않을 맛이었다. 다행히 피자는 맛있어서 두 판을 싹 먹어치울 수 있었다.

자위아 시내 사거리

피자집 앞 사거리. 가로수가 참 반듯하니 맘에 든다

피자를 먹고 배가 부르니 꾀가 난다. 어림잡아 4~5km는 걸어가야 바다가 나올 듯 하니 택시를 타기로 했다. 시내에도 택시가 보이지 않아 길가의 경찰관에게 어디가면 택시가 있는 지 물어봤으나, 이 분도 영어를 못하신다. 그래도 한 나라의 공무원 쯤 되면 고등교육을 받아서 간단한 영어 정도는 알아들을 줄 알았으나, 리비아 고등교육에 영어는 없나 보다. (그렇진 않다. 최근의 학생들은 영어를 조금씩 구사한다)

그래도 택시라는 단어는 알아듣고 어딘가를 가리키는데, 택시는 없고 차들이 줄지어 서있다. 알고보니 무허가 택시(일명 나라시)다. 잠깐 서서 살펴보니 운전석에 사람이 있으면 길가던 사람이 뭐라뭐라 말을하곤 차에 올라타 어디론가 떠난다. 아무래도 이 동네에선 이게 일반화된 형태인 듯 했다. 우리도 차를 하나 골라서 손짓발짓 해가며 바다, 해변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 말이 안통하는 눈치다. 그런데 이 분이 차에서 내리더니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을 불러온다. 대학생 쯤 되보이는데 영어를 어느정도는 한다.

바다를 보고 싶고, 바다에 도착하면 한 시간 정도 차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여기까지 태워다 주면 된다. 이런 거래 조건을 얘기하고 나니 둘이서 아랍어로 얘기를 나누고는 5 디나를 달란다. 거래성립. 그래서 무사히 바닷가에 당도할 수 있었다.

사실 바다는 매우 아름다웠다. 지중해라는 단어가 약간의 환상을 가지게 했는지, 빛깔이나 느낌이 우리나라 바다보다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해변이 모래사장은 아니었지만 제주도의 바다처럼 현무암의 낮은 절벽으로 눈 닿는 곳까지 해안선을 이루고 있었다. 문제는 그 해안의 바로 안쪽. 하필 택시가 그곳으로 간 것인지, 다른 곳은 바다로 이어지는 길이 없었는지, 그곳은 쓰레기 매립장이었다. --;

지중해 해안

지중해 해안

지중해. 당시엔 카메라가 없어서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했다.

그래도 좋다고 한 시간여 바다냄새 맡으며 고향생각도 하고, 돌아오는 길은 나갔던 여정의 역순으로 차근차근 밟아 무사히 돌아왔다. 내일은 더 멀리 나가보자는 결의를 다지며. (그 다음날도 휴일이라 트리폴리까지 무턱대고 나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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