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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폴리 국립 박물관 본문
트리폴리의 중심점이랄 수 있는 그린스퀘어에 가면, 푸르른 공원과 파란 하늘, 지중해 항구가 나름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그 한 켠을 장식하는 것이 아싸라야 알 함라(Assaraya al Hamra) 트리폴리의 옛 성곽이다.
설계팀의 막걸리 공범들~^^ 지금은 다들 먼저 귀국길에 올랐다. |
이베리아(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부터 아랍왕국과 전쟁을 벌이던 스페인 군대는 북아프리카 연안을 따라 이곳 리비아 지역까지 영토를 넓혔고, 성 요한 기사단(Kinghts of St.John)과 함께 트리폴리에 요새를 구축하게 된 것이 이 성의 지금 모습이다. 현재의 박물관은 유네스코와 함께 1988년 성의 내부를 개축해 개관한 것이다.
성 요한 기사단은 몰타 기사단이라고도 불리며, 1099년 성지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명분으로 세워졌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슬람 세력에 밀려 기독교 세력이 후퇴할 때 키프로스로 피신하여 끝까지 저항하였으며, 이후 지중해 지역의 영향력 있는 군사조직으로 남아 몰타섬에 정착하였다. 18세기 나폴레옹에 의해 근거지가 점령당하여 유럽지역을 떠돌다가 로마에 정착해 현재까지 독자적인 헌법과 법원 등 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존속해 있다.
사실 박물관을 찾은 건 최근의 일이다. 휴일인 금요일에 박물관이 개관하지 않는데다, 평일에도 오전에만 관광객을 받아주기 때문이다. 국립 박물관이라 하기엔 소박한 규모인데다, 로마유적을 제외하곤 볼만한 게 적다는 점도 차일피일 에둘러 가게 된 배경이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에서 12시, 입장료는 6 디나. 사진은 마음대로 찍어도 된다.
박물관의 입구. 여행안내서에는 오후에도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올해만 그런것인지 오후에는 입장을 안시켜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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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입구에서 순서대로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 비잔틴, 아랍왕국 순으로 유적을 나열하고 있다. 특히 로마시대를 전후로한 유적이 많고, 생각보다 아랍이나 이슬람과 관련한 유물은 적다. 위쪽으로 가면 이 지역 원주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전시물들이 있으나, 관람객의 눈높이를 맞추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더구나 온통 아랍어 설명 뿐이라... 가이드를 대동한 유럽의 관광객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대개 독일이나 프랑스 사람들이어서 귀동냥으로도 설명을 듣지 못하니, 그저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관람이였다.
트리폴리라는 지명은 원래 이 지역의 고대도시에서 유래한다. 서쪽의 사브라타(Sabratha), 이 곳 트리폴리의 옛 이름 오에아(Oea), 그리고 동쪽의 랩티스마그나(Laptis Magna). 이 세 도시를 일컬어 Tri police라 한 것이 그대로 굳어 트리폴리타니아가 됐다.
로마시대에는 이곳 출신의 황제도 배출할만큼 세 도시가 번성했으나, 로마제국의 몰락과 함께 도시도 쇠퇴하면서 사브라타와 랩티스마그나는 역사에서 잊혀졌는데, 이 덕분에 두 곳의 많은 유물들은 모래속에서 원형을 보존할 수 있었고, 1500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발굴되고 복원되어 우리 눈 앞에 설 수 있었다. 박물관의 유물들은 상당수 그들 도시에서 출토된 것들이니 현재는 두 도시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역사 유적이다.
특이하게도 박물관 입구에는 두 대의 자동차가 있다. 왜 여기에 자동차가 있을까 했는데, 1969년 9월 1일 혁명의 날에 '카다피'가 탔던 차란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치있는 유물일까? 잠깐 리비아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사실 리비아라는 나라가 구성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과거로부터 지중해 지역의 패권을 가진 세력이 이 지역을 통치했고, 트리폴리타니아(트리폴리 지방), 키레나이카(리비아 제2의 도시인 뱅가지를 중심으로 한 지방), 페잔(남부 사막지대)을 하나로 묶어 현재의 리비아와 같은 구획을 한 건 20세기 초 이탈리아였다. 양차 세계대전 후 서방국가들에 의해 왕정국가가 세워지면서 비로소 리비아란 나라가 등장했으니 과연 오랜 세월 이 지역에서 뿌리내린 사람들에게 국가란 무슨 의미일까?
제벨 고원을 멀리서 바라본 풍경. 고원은 수백 킬로미터를 이어가는데, 자세히 보면 그 위쪽에 마을들이 있다. |
트리폴리 지역은 해안으로부터 수십 킬로미터가 평야 지대고, 그 뒤를 제벨(Jebel, 산)이 둘러싸고 있는데, 산이라기 보다는 고원에 가깝고, 테이블처럼 평평하게 튀니지에서 트리폴리까지 이어져 있다. 그런데 흥미를 끄는 건, 이 지역의 오래된 마을과 도시들이 거의 그 경계선인 제벨 위쪽에 자리한단 점이다. 뒤로는 사막이고 앞으로는 낭떠러지인 곳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역사적으로 수많은 침략으로 인해 멀리 내다보이는 곳에 마을을 자리잡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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