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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폴리 국립 박물관 본문

리비아

트리폴리 국립 박물관

☜▩^^▩☞ 2009. 10. 23. 01:00

트리폴리의 중심점이랄 수 있는 그린스퀘어에 가면, 푸르른 공원과 파란 하늘, 지중해 항구가 나름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그 한 켠을 장식하는 것이 아싸라야 알 함라(Assaraya al Hamra) 트리폴리의 옛 성곽이다.

설계팀의 막걸리 공범들~^^ 지금은 다들 먼저 귀국길에 올랐다.

이베리아(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부터 아랍왕국과 전쟁을 벌이던 스페인 군대는 북아프리카 연안을 따라 이곳 리비아 지역까지 영토를 넓혔고, 성 요한 기사단(Kinghts of St.John)과 함께 트리폴리에 요새를 구축하게 된 것이 이 성의 지금 모습이다. 현재의 박물관은 유네스코와 함께 1988년 성의 내부를 개축해 개관한 것이다.

성 요한 기사단은 몰타 기사단이라고도 불리며, 1099년 성지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명분으로 세워졌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슬람 세력에 밀려 기독교 세력이 후퇴할 때 키프로스로 피신하여 끝까지 저항하였으며, 이후 지중해 지역의 영향력 있는 군사조직으로 남아 몰타섬에 정착하였다. 18세기 나폴레옹에 의해 근거지가 점령당하여 유럽지역을 떠돌다가 로마에 정착해 현재까지 독자적인 헌법과 법원 등 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존속해 있다.

사실 박물관을 찾은 건 최근의 일이다. 휴일인 금요일에 박물관이 개관하지 않는데다, 평일에도 오전에만 관광객을 받아주기 때문이다. 국립 박물관이라 하기엔 소박한 규모인데다, 로마유적을 제외하곤 볼만한 게 적다는 점도 차일피일 에둘러 가게 된 배경이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에서 12시, 입장료는 6 디나. 사진은 마음대로 찍어도 된다.

박물관의 입구. 여행안내서에는 오후에도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올해만 그런것인지 오후에는 입장을 안시켜준다.

박물관은 입구에서 순서대로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 비잔틴, 아랍왕국 순으로 유적을 나열하고 있다. 특히 로마시대를 전후로한 유적이 많고, 생각보다 아랍이나 이슬람과 관련한 유물은 적다. 위쪽으로 가면 이 지역 원주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전시물들이 있으나, 관람객의 눈높이를 맞추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더구나 온통 아랍어 설명 뿐이라... 가이드를 대동한 유럽의 관광객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대개 독일이나 프랑스 사람들이어서 귀동냥으로도 설명을 듣지 못하니, 그저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관람이였다.

트리폴리라는 지명은 원래 이 지역의 고대도시에서 유래한다. 서쪽의 사브라타(Sabratha), 이 곳 트리폴리의 옛 이름 오에아(Oea), 그리고 동쪽의 랩티스마그나(Laptis Magna). 이 세 도시를 일컬어 Tri police라 한 것이 그대로 굳어 트리폴리타니아가 됐다.

로마시대에는 이곳 출신의 황제도 배출할만큼 세 도시가 번성했으나, 로마제국의 몰락과 함께 도시도 쇠퇴하면서 사브라타와 랩티스마그나는 역사에서 잊혀졌는데, 이 덕분에 두 곳의 많은 유물들은 모래속에서 원형을 보존할 수 있었고, 1500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발굴되고 복원되어 우리 눈 앞에 설 수 있었다. 박물관의 유물들은 상당수 그들 도시에서 출토된 것들이니 현재는 두 도시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역사 유적이다.

특이하게도 박물관 입구에는 두 대의 자동차가 있다. 왜 여기에 자동차가 있을까 했는데, 1969년 9월 1일 혁명의 날에 '카다피'가 탔던 차란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치있는 유물일까? 잠깐 리비아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사실 리비아라는 나라가 구성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과거로부터 지중해 지역의 패권을 가진 세력이 이 지역을 통치했고, 트리폴리타니아(트리폴리 지방), 키레나이카(리비아 제2의 도시인 뱅가지를 중심으로 한 지방), 페잔(남부 사막지대)을 하나로 묶어 현재의 리비아와 같은 구획을 한 건 20세기 초 이탈리아였다. 양차 세계대전 후 서방국가들에 의해 왕정국가가 세워지면서 비로소 리비아란 나라가 등장했으니 과연 오랜 세월 이 지역에서 뿌리내린 사람들에게 국가란 무슨 의미일까?

제벨 고원을 멀리서 바라본 풍경. 고원은 수백 킬로미터를 이어가는데, 자세히 보면 그 위쪽에 마을들이 있다.

트리폴리 지역은 해안으로부터 수십 킬로미터가 평야 지대고, 그 뒤를 제벨(Jebel, 산)이 둘러싸고 있는데, 산이라기 보다는 고원에 가깝고, 테이블처럼 평평하게 튀니지에서 트리폴리까지 이어져 있다. 그런데 흥미를 끄는 건, 이 지역의 오래된 마을과 도시들이 거의 그 경계선인 제벨 위쪽에 자리한단 점이다. 뒤로는 사막이고 앞으로는 낭떠러지인 곳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역사적으로 수많은 침략으로 인해 멀리 내다보이는 곳에 마을을 자리잡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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