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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여성차별과 이슬람

☜▩^^▩☞ 2009. 11. 22. 01:00

슬람 사회의 여성차별에 대해 언급한 글들이 인터넷을 뒤져보니 꽤 많다. 블로그를 개설하기 전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글들을 읽기 시작했고, 또 밖에 다니며 아주 간접적으로 이슬람 사회를 경험했으나, 아직 결론짓기는 힘들다. 하지만 느낀점들을 정리해본다.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의구심'이었다. 리비아에 오기 전부터 막연하게 '히잡'이라던가 여러가지 이슬람 사회의 여성차별에 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생활하면서 마주치는 이들의 모습은 히잡을 썼다는 점을 빼곤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그 첫번째 계기는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거리에는 횡단보도나 육교 같은게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아무데서나 길을 건넌다. 그런데 남자가 건널때와 여자가 건널때의 운전자들 반응이 사뭇 달랐던 것이다.

남자가 길을 건널 경우, 그걸 발견한 운전자는 확실히 부딪히고 말꺼란 상황이 아니면 가던 속도 그대로 차를 몰아간다. 그리고 간혹 어떤 운전자들은 속력을 더 높여 돌진해오기까지 한다. (필자도 종종 경험한다. ㅡㅡ;) 그런데 여자가 길을 건널 경우,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진다. 보행자를 보호하려는 태도를 운전자들이 보여주며, 때로 아직 건너오지도 않았는데 차를 세우고 기다리는 경우까지 있다.

좀 웃기는 예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것을 보면서 이 사회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됐다. 물론 전부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성운전자에게 더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은 우리와 좀 다르긴하다. (이곳의 운전환경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전쟁터라 할 수 있으니 상상해보기 바란다) 이 예에서부터 '과연 여성들은 차별받고 있는가'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리비아 여성들. 적어도 리비아에선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여성차별이 없어보인다.

슬람의 여성차별에 대한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방글라데시와 같은 곳에선 청혼을 거부한 여자에게 '염산테러'를 자행하기도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여성의 참정권이 없으며, 운전도 금지돼있고, 여자 혼자 밖을 다닐수도 없다. 터키와 같은 곳에선 '명예살인'이 일어나기도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은 전신을 완전히 가리는 부르카를 입고다녀야만 하며, 이란에서 여자는 축구경기를 관람할 수 없다. 많은 이슬람 국가들에서 확실히 여성은 차별받고 있으며 남성은 여성의 우위에 있다.

왜 그럴까? 이슬람이기 때문에?

이슬람이 아닌 나라들, 특히 기독교 국가들은 어떨까? 여성인권이 평등하다고 할 수 있는 나라들을 생각해봤다.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서구 선진국. 이 나라들은 이슬람이 아닌 기독교이기 때문에 여성이 평등한 대접을 받게 됐을까? 그 영향이 없진 않았겠지만, 기독교의 전파와 여성인권의 역사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을 보면 종교적인 이유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서구 국가들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된건 불과 100년도 되지 않는다. 미국은 1920년, 영국은 1928년, 프랑스는 1946년이니 말이다. 시대착오적 예를 하나 꼽자면, 기독교단체인 서울YMCA는 여성회원의 의결권이 없다.(지금은 이 시대착오적 관행이 개선됐길 바란다)

이슬람의 여성권리는 현재진행형이다. 많은 사람들이 남성중심의 여성억압 제도들을 뜯어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슬람 여성이자 인권운동가로서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란의 시린 에바디(Shirin Ebadi)는 지금도 여성권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의 하나다. 그는 여성억압이 '이슬람' 때문이란 오해 때문에 여성운동이 '반이슬람'운동으로 매도된다고 말한다. '이슬람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무슬림이면서도 더 나은 법을 가질 수 있다. 여성 억압은 이슬람 때문이 아니다'

돌이켜보자면 여성에 대한 차별이 줄어들고 여성의 권리가 신장된 것은 종교적 혜택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의 노력에 의해서였다. 그건 여권 뿐 아니라 인권의 역사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기독교가 널리 퍼졌던 중세에도 종교개혁이 일어난 16세기에도 사람들의 인권은 그다지 보호받지 못하는 권리였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헌법을 만들면서부터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세우고 모든 국민의 권리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 권리란 것이 제대로 자리잡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아픔이 뒤따랐다. 그리고 아직도 그 과정중에 있다. '권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획득하는 것인가 보다.

론짓자면, 이슬람 사회의 여성억압은 여전히 존재하는 악습이다. 그리고 그것을 개혁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 역시 존재한다. 꾸란에 대한 해석이 어떻든, 이슬람이 여성억압의 원인이든 아니든(현 시점에서 나는 그렇지 않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부딪히고 겪어내며 쟁취해야할 권리다. 결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란의 구절들이 궁금해서 찾아봤다. 물론 아랍어를 모르니 한국어 번역본이다. 번역자의 의도가 조금은 개입됐겠지만, 사우디의 국립꾸란출판청에서 전세계의 언어로 번역해 만든 해설서이니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오해의 소지도 많아 보이고 전혀 차별적인 내용이 아닌 부분도 많았다.

더불어 원리주의적(보수적)인 입장과 진보적(내 나름으로 구분한)인 입장의 해석을 들어봤다. 아이러니하게도 원리주의적인 입장은 기독교단체에서 꾸란을 읽는 방법과 매우 닿아있다. 꾸란은 여성차별을 명문화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반대로 진보적인 입장은 꾸란이 계시된 7세기 아라비아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꾸란은 다른 경전과 달리 처음 계시되어 명문화된 이후 글자하나 토시하나도 바꾸지 않고, 심지어는 다른 언어로 번역되지도 않고 그대로 전해졌다. 장단점이 있으리라 생각되는데, 장점은 후세의 인간에 의해 원래의 구절이 훼손되지 않고 왜곡되지 않는다는 점이며, 단점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언어의 의미도 변화하고 사회적 상황도 변화하는 것에 대응하기 어렵단 점이다. (그래서 결국 읽는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한다)

사실 몇가지 사소한 경험에 비춰보면 리비아는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여성차별이 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우리나라에 여성차별이 없다는 건 아니다). 여성들도 교육의 기회가 동등하게 제공되며, 직장생활을 하고 참정권도 있으며 운전도 하고 다닌다. 차에 탈때도 여성에게 자리가 양보되며 마트에서도 남자는 짐꾼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비슷하단 느낌이다.

가지 덧붙여, 리비아를 미화하자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런 점은 우리나라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게 있어 적는다. 저녁무렵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승합택시 정류장. 차가 도착할 때 마다 사람들이 우르르 뛰어가 먼저타려고 아우성이다. 삐끼(사람들 모아 태우고 기사에게 수수료를 받는다)들도 사람들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때 어떤 부부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정류장에 나타났다. 갑자기 삐끼가 앞에있던 모든 사람을 제치고 이 일행을 일순위로 차에 오르게 한다(물론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나타나도 마찬가지다. 자리가 부족하면 먼저 탔던 남자를 내리고 여자를 태우는 경우도 있다. 이 사회가 과연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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